국내항공역사  
최초의 국제선 주력기 DC-4기의 활약
 

1953. 10 미국에서 도입한 대한국민항공사(KNA) DC-4(HL108) 4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유물이었으나, 당시 한국의 최신 항공기로 국제선에 투입할 유일한 기종이었다. 최대 좌석수 72석 DC-4는 기종 선정과정에서 신기재 평가능력이 아주 낮았던 당시로는 확실한 선정기준이 없어 우수한 기종이라는 정보만이 유일한 근거였다.

DC-4 원적은 2차 대전 때 미군 수송기 C-54인데 DC-4 이름으로 민항기로 쓰이기까지는 복잡한 사연이 숨어 있다. DC-4 역사는 193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팬암, TWA 등에서 대륙횡단 대형 수송기 제작요구를 받은 더글러스사가 개발을 시작, 1940년에 생산을 개시했는데, 1호기 완성 직전에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이 이 신예 수송기의 운명을 크게 바꾸어 버렸다.

즉 미군은 개전과 동시에 민항 각사의 발주기를 징발, C-54라는 군용명을 붙여 더글러스사에 전력(全力) 생산을 명령, 1호기가 처녀 비행한 것은 1942년 2월 14일이었다. C-54는 2차대전 기간중 미 육해군(해군용 명칭은 R5D)에 의하여 활발히 쓰여졌으며, 특히 장거리 공수작전에서 성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1946년까지 생산이 계속된 C-54는 총 1,162대로서 그중 수 백대는 종전과 함께 민간에 불하되어 전후 공수계(空輸界)에 한 시대를 만들었는데, 이들 항공기가 당초 계획했던 DC-4 이름으로 호칭됐고, 대한국민항공사가 도입하여 한국에 첫 선을 보인 것이었다. 생산도 재개되어 그 1호기가 1946. 3. 7 아메리칸항공 노선에 취항했다.

KNA가 DC-4를 도입한 1953년에는 세계 주력기는 이미 이보다 고성능인 DC-6으로 바뀌고 DC-4는 간선 주력기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었으나 세계적인 기재부족 영향으로 구 군용 C-54마저 입수난이 심각했다. 더구나 중고기가 최초 구입가 2배 이상 값으로 거래되는 상황에서 민수형, 군수형을 가릴 것 없이 DC-4형으로 입수만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1953년 당시 민간형 DC-4 생산은 이미 끝나(총 79대) 거래되는 것은 중고기 뿐이었는데 그나마 상태가 좋은 것을 엄선하는 작업은 정확한 자료도 기준도 없는 상태라 곤란한 작업이었다. KNA가 도입한 DC-4기는 민수형으로 개조된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하늘을 나는 궁전’ 대접을 받아가며 1954. 8 서울-대북-홍콩 동남아노선 개척기로 1956. 12 멜버른 올림픽에 한국선수단 50명을 싣고 2차 왕복비행, 1957. 10 한국전 고아 80명을 싣고 알래스카와 시애틀을 거쳐 미동부 포틀랜드까지 왕복했고, 1959. 12 중국선원 45명을 대북에서 서울을 거쳐 캐나다 벵쿠버까지 수송하는 등 전후의 국제민간항공 재건기에 혁혁한 공적을 남겼다.

이 DC-4는 대한국민항공사의 불운과 함께 1962. 4 사세당국에 압류되는 곤욕을 겪은 후 엔진 분해정비를 거쳐 대한항공공사의 주력기로서 1963. 4 서울-대구-부산 노선에 재투입되어 1964년 초 F-27 2대가 취항함과 동시에 명예롭게 퇴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