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항공역사  
C-3 (창랑호)의 납북
 

1958. 2. 16 오전 10시30분 승객 28명 승무원 3명이 탑승하고 부산 수영비행장을 이륙,평택상공에 이르렀을 때에 무장 괴한에 의해 휴전선을 넘어 평안남도 순안 비행장에 납북 강제 착륙되었다. 우리나라 민항사상 처음으로 항공기를 공중 납치한 무장괴한은 황해도 사리원에서 1.4 후퇴 때 남하한 김형(35)과 그의 처 김미숙과 두아들 김택선,길선 형제와 김애희(51), 백순기(27), 이광호(26) 등 7명이였다.

사건발생 6일 후 국회는 참전 16개국에 납북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발송, 세계여론을 환기시키고, 2. 24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승객, 승무원과 기체의 송환을 요구하여 납북 18일 만에 간첩을 제외한 승객과 승무원을 송환하였으나 기체는 끝내 송환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대한국민항공사는 막대한 재정 손실은 물론 항공기 이용 여객이 항공여행에 대한 공포심으로 수요도 감소하여 적자요인은 확대되기만 하였다.